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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N][Science &] 태풍이 몰아쳐도 안 꺼져요…성화봉의 진화' 글 입니다.

[MBN][Science &] 태풍이 몰아쳐도 안 꺼져요…성화봉의 진화

분류 : 공동체 명 부서명 : 부서 명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자 : 2017.11.14

조회수 4005

첨부파일 : No File!

[Science &] 태풍이 몰아쳐도 안 꺼져요성화봉의 진화

  • 원호섭 기자
  • 입력 : 2017.11.10 15:50:11   수정 : 2017.11.10 20:34:32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봉에 숨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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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을 빚어 인간을 창조한 '프로메테우스'. 하지만 인간에게는 먹이를 잡기 위한 강력한 발톱도, 체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따뜻한 털도 없었다.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가 이 같은 능력을 모두 동물에게만 줬기 때문이다. 인간의 육체적 나약성을 안타까워하던 프로메테우스는 결단을 내렸다. 제우스 지팡이 끝에서 몰래 '불씨'를 훔친 뒤 이를 인류에게 건넨 것. 이 사실을 알게 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코카서스 산꼭대기에 묶은 뒤 독수리로 하여금 간을 파먹게 하는 잔혹한 형벌을 내렸다.
이 같은 프로메테우스의 희생으로 불씨를 얻은 인류는 추위와 배고픔에서 벗어났고 문명을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기원전 776년 처음 열린 그리스 올림픽은 신화 속의 이야기지만 인류에게 커다란 선물을 안겨준 프로메테우스를 기리기 위해 경기장에 불을 피웠다. 올림픽 성화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지난 1일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그리스 펠로폰네소스에 위치한 헤라 신전에서 태양빛으로 점화된 불꽃이 한국에 도착했다. 전용기를 타고 온 귀하신 불꽃은 인천공항에서 곧바로 성화봉에 옮겨진 뒤 총 2018㎞, 101일간의 국토 대장정을 시작했다.

성스러운 불을 의미하는 성화. 하지만 '불'은 비바람에 노출되면 언제든 꺼질 수 있다. 그래서 성화가 꺼지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올림픽을 준비하는 나라들은 성화봉에 온갖 과학을 집어넣었다.

불을 피우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산소, 탈 물질, 그리고 발화점 이상의 온도. 이를 '연소의 3요소'라고 한다. 불꽃 역시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 활활 타오른다. 과거 올림픽에서는 불꽃을 유지하기 위해 화약과 올리브 오일(기름)을 사용했다. '헥사민'과 '나프탈렌'을 섞은 연료에 불꽃을 점화시키기도 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두 물질을 합쳐 인화성이 강한 휘발성 물질을 만든 뒤 불꽃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화학과 기름 등을 이용한 방식은 불꽃이 뚝뚝 떨어지는 횃불과 비슷해 안전성에 문제가 있었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는 성화 봉송 주자 팔에 불꽃이 떨어지면서 데는 일이 실제 발생하기도 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이 돼서야 성화봉 연료가 바뀌었다. 액체로 보관 가능한 LPG를 이용했다. 원유 정제 시 발생하는 LPG는 상온에서 기체로 존재하지만 압력을 가하면 액체로 바뀐다. 이덕환 교수는 "LNG는 영하 160도까지 떨어트릴 수 있는 냉동선과 이를 저장할 수 있는 냉동고를 만들어야 운반 가능했기 때문에 1970년대까지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활용이 어려웠다"며 "LPG는 작은 압력만 가해도 액체로 변하는 성질 때문에 이동이 용이한 만큼 1960년대 중·후반부터 널리 활용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액체 상태로 보관하던 LPG를 작은 구멍을 통해 방출시키면 압력이 낮은 대기와 만나면서 기체로 바뀐다. 성화봉에서는 일정량의 LPG가 빠져나오기 때문에 불꽃은 항상 같은 강도로 타오를 수 있게 됐다. 특히 LPG를 사용하면서부터 성화봉 무게가 가벼워지고 세련된 모습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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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봉 제작은 올림픽을 개최하는 국가 몫이다. 많은 나라들은 불꽃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성화봉에 접목하고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성화봉 제작을 맡은 곳은 중국 국영기업 '중국항공우주과학공업그룹(CASIC)'이었다. 발사체 연소 시스템을 개발하던 CASIC가 성화봉 제작을 맡은 이유는 중국이 높이 8840m에 달하는 에베레스트산을 경유하는 성화 봉송 이벤트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산소가 적고 온도가 낮으며 눈보라가 몰아치는 환경에서 불꽃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중국은 에베레스트와 같은 극한 환경에서 불꽃을 유지하는 일이 우주로 향하는 발사체 연소 메커니즘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CASIC는 발사체 연료 연소 때 적용하는 유체역학은 물론 엔진 시스템 기술을 성화봉에 적용했다.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 불꽃은 에베레스트 정상에서도 활활 타올랐다.

평창동계올림픽 성화봉의 특징은 뭘까. 성화봉을 제작한 한화는 "평창동계올림픽 성화봉에는 무엇보다 안정적인 불꽃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최첨단 기술이 들어가 있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는 가스가 나오는 '연소부'에 격벽을 세운 것이다. 위에서 성화봉을 내려다보면 격벽 때문에 십(十)자 모양을 띤다. 4개의 격벽은 강풍에 불꽃이 꺼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오른쪽에서 강한 바람이 불면 불꽃이 왼쪽으로 기울어지고 불꽃의 연소를 돕는 가스가 강한 강풍에 흩어지면 불은 꺼질 수밖에 없지만 작은 격벽을 설치하면 가스가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고 일정량 나올 수 있다. 불꽃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하더라도 격벽이 바람을 막아주기 때문에 가스를 사방에서 분사시켜 불꽃을 유지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불꽃이 갖고 있는 열에너지를 재활용했다는 점이다. 액체 연료는 작은 노즐을 통과하면서 기체로 바뀌어 공급된다. 액체가 기체로 바뀌는 과정인 '기화'가 발생하면 주변의 열을 빼앗기 때문에 짧은 순간 불꽃 인근 온도가 떨어진다. 만약 영하 20도 온도에서 성화봉에 불을 점화하면 실제 불꽃이 있는 부위 온도는 더 낮아지는 것이다. 평창 성화봉은 불꽃에서 발생하는 열 에너지를 내부 코일을 이용해 가스공급장치에 공급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기화가 일어날 때 발생하는 온도 저하를 불꽃의 따뜻함으로 감쌀 수 있게 한 셈이다. 한화에 따르면 실험 결과 평창 성화봉 불꽃은 영하 35도에서도 꺼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평창 성화봉은 눈이나 비를 막을 수 있는 우산형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불꽃이 비나 눈에 노출되면 열량을 빼앗기면서 에너지가 손실되고 꺼질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성화봉 연소부 윗부분에 우산 형태 구조물을 덧씌워 비나 눈이 옆으로 흘러내리도록 설계했다.

한화는 "성화봉은 최초 개발 시 목표 설정부터 평창의 저온과 강풍 조건을 고려해 만들었다"며 "고도 2000m, 순간 풍속 초속 35m, 영하 35도 환경에서도 15분 가까이 불꽃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하단부 '캡'은 DMZ 철조망을 부품 재료에 녹여내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원호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