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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사이언스]폭염과 인류: 더위를 극복하는 건강한 방법' 글 입니다.

[동아사이언스]폭염과 인류: 더위를 극복하는 건강한 방법

분류 : 공동체 명 부서명 : 부서 명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자 : 2017.07.31

조회수 6799

첨부파일 : No File!

폭염과 인류: 더위를 극복하는 건강한 방법

2016년 08월 28일 13:00

정말 더운 여름입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 8월 서울 평균 기온은 무려 108년 만의 최악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불과 100여 년 전에야 근대적 기상 관측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정확히 몇 년 만의 무더위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더위가 100년 만의 더위인지 혹은 1000년 만의 더위인지 사실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108세 미만의 모든 분들이, 생애 최악의 폭염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 만은 확실합니다. 참 덥네요.

 

GIB 제공
GIB 제공

 

 

● 더위와 인류


연구에 따르면, 서기 950년 전부터 1250년 전 사이에 지구가 약간 ‘따뜻해진’ 적이 있습니다. 그 시기를 중세 온난기(Medieval Warm Period)라고 합니다. 대서양 인근 대부분 지역의 온도가 상당히 올라가서, 유럽의 상습적인 기근이 사라지고 심지어는 영국과 노르웨이에서도 포도를 재배했습니다. 영국에서 생산된 와인이 ‘프랑스(!)’에서 아주 인기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서기 1300년 이후부터 다시 추워집니다. 그때부터 최근 150년 전 까지를 소빙기(Little Ice Age)라고 합니다.


당시 아시아 지역의 기후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호수 바닥에 깔린 침전물의 성분을 통해서 추정한 일부 연구에 의하면, 일본도 서기 750년부터 1200년까지 온난기를 겪었습니다. 중국에 대한 연구는 더 부족하지만, 확실히 17세기 무렵의 약 100년, 그리고 19세기 무렵의 약 50년은 지금보다 상당히 추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중세 온난화는 최소한 유럽과 아시아 등 북반구 지역에서는 보편적인 현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나 호주 등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는지는 아주 불분명 합니다. 아무튼 올 여름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는 폭염은, 약 1000년 만의 더위일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그린란드 지역의 과거 1500년 간의 기온 변화. 서기 1300년 무렵부터 최근 100년 전까지는 비교적 낮은 기온이 유지되었다.
그린란드 지역의 과거 1500년 간의 기온 변화. 서기 1300년 무렵부터 최근 100년 전까지는 비교적 낮은 기온이 유지되었다.


 

기후변화는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인간이 침팬지와의 공동조상과 갈라진 때는, 동아프리카의 기후가 건조하고 더워졌을 때였습니다. 인류가 아프리카를 지나 아시아와 유럽으로 건너갈 수 있었던 것도, 부분적으로 아프리카 북부와 중동 지역의 온난해진 기후의 역할이 컸습니다. 반대로 네안데르탈인이 강건하고 큰 체구를 가지게 된 것은 추운 기후 탓인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약 7만 년 전에는 갑자기 몰아 닥친 추위로 인해, 전체 인구가 1만 명 이하로 감소한 적도 있었습니다.


기온이 올라가면 보통 인구가 증가합니다. 농업생산량이 증가하고 거주지가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바이킹 족은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도 진출했고, 심지어 북미 대륙에도 정착했습니다. 유럽에서는 거대한 성당이 건축되었고, 다양한 예술과 문화가 꽃피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중세 온난기의 온화한 기후가, 긴 기간 유럽사회를 지배한 암흑기를 끝낸 일등 공신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중앙아시아에서는 몽골족의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강대한 몽골제국, 즉 원나라를 세웠죠.


물론 중세 온난기가 인류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습니다. 심지어 이를 예로 들어가며, 지구온난화 이슈는 단지 강대국의 음모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다한 이산화탄소 배출과 관련한 급격한 온난화가, (중세 온난화와는 달리) 끔찍한 재앙을 일으킬 것이라는 사실은 거의 확실합니다. 아무튼 여기서는 거시적인 차원에서의 지구 온난화의 명암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접고, 당장 오늘의 무더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 폭염과 정신건강


호주 남쪽에 위치한 애들레이드는 비교적 온화한 기후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여름에는 평균 30도 정도의 무더운 날씨를 보이기도 합니다. 호주의 기후는 아주 변덕스럽게 때문에, 종종 열파(Heat wave)가 상당기간 도시 전체를 덮치기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열파란 예년보다 5도 이상 높은 기온이 5일 이상 지속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애들레이드는 폭염이 정신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기 적합한 도시입니다. 물론 열대 지방에는 이보다 훨씬 더운 지역이 많지만, 그곳의 사람들은 이미 더위에 적응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따로 폭염이 미치는 정신적 영향을 연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애들레이드 대학의 연구자들이 약 13년 간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열파가 찾아오면 정신 증상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하는 환자가 평균 7.3% 증가했습니다. 주로 기분장애, 신경증, 스트레스 관련 장애 및 신체형 장애였습니다. 이로 인한 사망률도 증가했는데, 65-74세의 노인이나 조현병, 망상장애 등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었습니다. 치매환자들의 사망도 꽤 늘어났습니다. 더위를 인지하고, 적절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할 뿐 아니라, 복용하는 약물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흔히 폭염에 대해서는 보통 열사병이나 열탈진 등 신체적 영향을 먼저 걱정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장기간의 열파는 신체만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정신적 증상을 유발하고 관련된 사망률도 높일 수 있습니다.


입원이 필요한 정도의 심각한 정신장애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장기간의 무더위는 다양한 심리적 반응을 유발합니다. 더울 때 쉽게 짜증이 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폭염이 지속되면, 사람들은 보다 호전적으로 변합니다. 작은 일에도 편집적으로 화를 내며, 공격적으로 변합니다. 종종 음주량도 늘어납니다. 폭력과 살인, 강간이 증가합니다. 심지어 정치적으로 불안한 일부 국가에서는, 폭염이 내전으로 이어진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심한 더위를 경험하는 사람은 불안은 감소하고 각성도는 떨어지기 때문에, 실수도 자주 하고 부주의해 집니다. 어떤 사람은 우울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흔히 더우니까 기력이 떨어진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지만, 일부는 임상적인 관심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해지기도 합니다. 단지 지친 것이 아니라, 우울증에 빠진 겁니다. 열대야의 직접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우울감으로 인해서 불면을 호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 인간의 몸은 더위에 적응했다?


제 주변에는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을 켜지 않는 분이 있습니다. 심지어 선풍기 바람도 꺼립니다. 인간은 더운 아프리카에서 진화했으니, 우리 몸은 이미 더위에 적응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가는 곳마다 에어컨을 끄고 다니면서, 자신이 주변 사람의 건강도 챙겨주는 셈이라고 말합니다. 계절의 변화는 자연의 이치인만큼, 여름에는 더위를 느껴야만 몸이 더 튼튼해 지고 건강에도 더 좋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물론 인류는 더위에 - 그리고 추위에도 - 적응해왔습니다. 인류가 두발보행을 시작하고, 몸에서 털이 사라진 것도 사바나의 더위에 적응하면서 먼 거리를 이동하려는 목적이었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류가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서 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사용한 방법은, 신체적인 적응보다는 사회문화적 차원의 적응이었습니다. 추위에 적응하기 위해서 옷을 만들어 입고, 집을 짓고 살며, 불을 피운 것처럼, 더위에도 적응하기 위해서 다양한 혁신을 이루어 왔습니다. 여름에는 모름지기 더워야 하기 때문에 선풍기나 에어컨을 켜지 말아야 한다면, 겨울에도 두꺼운 옷을 입거나 난방을 하지 않아야 이치에 맞습니다.


물론 여름에는 어느 정도 더위를 느끼는 것이 낭만적일 수도 있습니다. 땀 좀 흘리면서 다같이 모여, 맛있는 수박을 썰어 먹는 것도 좋은 추억이죠. 하지만 폭염이나 열파의 상황이라면, 더 이상 낭만과 추억이 우선순위가 될 수 없습니다. 폭염은 분명 재난상황입니다. 게다가 더위에 대한 내성은 개인차가 심합니다. 건강한 성인에게는 견딜 만한 더위라도, 노약자나 어린 아이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특히 고혈압 등으로 인해 이뇨제나 베타차단제를 복용하는 경우는, 더위에 보다 취약합니다. 만약 더위가 건강에 좋다면, 왜 병원에서는 에어컨을 그렇게 ‘세게’ 틀겠습니까?


더위에 의한 손상은 기온이나 습도 자체보다는, 주관적인 취약성이 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서 캐나다에서는 폭염의 기준을, ‘추가적으로 사망률이 높아질 확률이 90%일 경우’로 정하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 기상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최고기온이나 지속기간 등을 기준으로 폭염이나 열파를 정의하지만, 개인별로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너무 더우면 꼭 에어컨을 켜시고, 없으면 선풍기라도 반드시 사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인류는 더위를 견디도록 진화한 것이 아니라, ‘에어컨을 발명해서’ 더위를 이기도록 진화한 것입니다(그럼 인류가 전기요금 누진제는 왜 발명했는지에 대해서는…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 무더위를 이기는 건강한 방법


무덥기로 유명한 서호주의 보건부에서는 폭염 시 정신건강을 지키는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호주 심리학회의 가이드라인도 참조해서,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보았습니다.

 

1. 건강한 행동 요령
- 폭염에 대한 방송을 주의 깊게 확인한다.
- 폭염과 관련해서 의사와 상의한다. 특히 투약 중인 약물이나 기존의 질환에 대한 주의사항, 피부가 잘 타게 하는 약물, 열사병이나 열탈진을 유발하는 약물이 없는지 확인한다.
- 의사의 특별한 조언이 없다면, 투약 중인 약물을 일정하게 복용한다.
-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 중 야외활동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가능하면 평상시와 비슷하게 활동한다.
- 친구, 가족, 이웃을 자주 만나고, 혼자 고립되지 않도록 한다.
- 노약자나 어린이에게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자주 안부를 묻는다.
- 자동차에 애완동물이나 어린 아이를 두고 내리지 않도록 주의한다.

 

2. 시원하게 지내기
- 영화관이나 쇼핑센터, 도서관 등 가능한 시원한 장소에 머무른다.
-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사용하고, 선풍기 앞에 얼음 바구니를 두어서 시원한 바람을 쐰다.
- 전력 수요를 줄이기 위해서, 다른 전기기구를 끄고 냉방기구에 전력을 집중한다.
- 그늘진 곳에서 낮잠을 잔다.
- 얼굴이나 몸에 자주 물을 뿌리고, 목이나 얼굴에 물수건을 얹거나 감는다.
- 자주 시원한 물로 샤워를 하거나, 몸을 물에 담근다.
- 가능한 땀이 잘 마르는 얇은 옷을 입고, 잘 때는 얇은 침구를 사용한다.
-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착용한다.
- 자외선 차단지수 30(SPF 30+) 이상의 선스크린 로션을 사용한다.

 

3. 건강하게 먹고 마시기
- (의사의 특별한 제한이 없다면) 목이 마르지 않아도, 충분히 물을 마신다(하루에 8-12잔).
- 그냥 물보다는 차가운 얼음물이 더 바람직하다.
- 외출 시에는 차가운 물통을 지참한다.
- 자주 가벼운 식사를 하고, 더운 음식은 피한다.
- 차와 커피, 술은 탈수를 유발하므로 가급적 피한다.

 

● 에필로그


무더위가 예상외로 오래가고 있습니다. 더위가 한풀 꺾인다는 주말은, 도대체 언제 오는 것일까요? 추석까지 더위가 지속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는 이도 있습니다. 내 몸 추스리기에도 더운 날씨입니다만, 힘을 내서 야외에서 고생하는 분들에게 시원한 물도 대접하고 주변의 노약자나 어린 아이들에게 ‘따뜻한’, 아니 ‘시원한’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떤 가이드라인에는, 폭염 시에 좋은 에어컨을 가진 친구 집에 방문하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 분의 집에 성능이 우수한 에어컨과 시원한 음료가 있다면, 평소 가까워지고 싶었던 친구나 혹은 마음에 두고 있었던 이성을 초대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더위는 언젠가 물러갈 것이지만, 폭염 속에서 여러분이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준 ‘쿨’한 모습은, 계속 ‘뜨겁게’ 기억될 것입니다.


※ 참고문헌:
1. Hansen, A., Bi, P., Nitschke, M., Ryan, P., Pisaniello, D., & Tucker, G. (2008). The Effect of Heat Waves on Mental Health in a Temperate Australian City. Environmental Health Perspectives, 116(10), 1369?1375
2. Adhikari, D. P., & Kumon, F. (2001). Climatic changes during the past 1300 years as deduced from the sediments of Lake Nakatsuna, central Japan. Limnology, 2(3), 157?168.
3. Ge, Q.-S., Zheng, J.-Y., Hao, Z.-X., Shao, X.-M., Wang, W.-C., & Luterbacher, J. (2010). Temperature variation through 2000 years in China: An uncertainty analysis of reconstruction and regional difference. Geophysical Research Letters, 37(3), n/a?n/a.
4. Det ustyrlige klima : eksperternes vej fra forskere til flagellanter | Københavns Biblioteker. (n.d.). Retrieved from
5. https://www.psychology.org.au
6. http://www.public.health.wa.gov.au/

 

※ 필자소개
박한선. 성안드레아 병원 정신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2014)을 번역했고,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 등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