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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사이언스] 광합성 규명 70년 만에 탄생한 인공 엽록체' 글 입니다.

[동아사이언스] 광합성 규명 70년 만에 탄생한 인공 엽록체

분류 : 공동체 명 부서명 : 부서 명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자 : 2020.06.01

조회수 5310

첨부파일 : No File!

합성 규명 70년 만에 탄생한 인공 엽록체




1946년 어느 날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화학자 멜빈 캘빈 교수는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1934년 원형 입자가속장치인 사이클로트론을 처음 만들어 1939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버클리방사선연구소(현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의 어니스트 로렌스 소장이 탄소14를 이용한 광합성 연구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의사를 물어본 것이다.

 

원래 광합성 연구는 1940년 연구소에서 사이클로트론으로 가속시킨 중양자(중수소의 원자핵)를 흑연에 충돌시켜 탄소14를 만든 화학자 마틴 캐먼과 이를 분석해 확인한 버클리대의 화학자 사무엘 루벤의 프로젝트였다. 방사성동위원소인 탄소14로 만든 이산화탄소를 투입해 식물이 광합성을 하게 한 뒤 잎을 채취해 탄소14가 포함돼 방사선을 내는 분자를 분석하면 광합성의 경로를 규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13년생 동갑으로 당시 27세였던 캐먼과 루벤은 일이 잘 풀리면 노벨상도 탈 수 있는 궤도에 올랐다. 이들은 식물의 광합성에서 나오는 산소가 이산화탄소가 아니라 물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제 이산화탄소가 어떻게 포도당 같은 유기분자로 바뀌는지 밝히는 일만 남았다. 

 

전쟁이 바꾼 운명

 

그런데 전쟁이 두 사람을 실은 열차를 탈선시켰다. 유럽의 전선이 확대되고 미국의 개입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정부는 일상적인 연구를 중단시키고 각 기관에 전쟁에 관련된 연구를 할당했다. 그 결과 캐먼은 탄소14가 아닌 다른 동위원소를 만드는 일을 했고 루벤은 화학무기인 포스겐 가스의 생리효과를 규명하는 연구를 해야 했다.

 

불행은 루벤에게 먼저 찾아왔다. 1943년 어느 날 교통사고가 나 오른 손목이 부러진 루벤은 완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구를 재개했고 손가락에 힘이 없어 포스겐이 들어있는 앰풀을 놓쳐 깨뜨렸다. 가스를 흡입한 루벤은 쓰러졌고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그날 밤 사망했다. 실험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던 생화학자가 어이없는 사고로 서른 살에 요절한 것이다. 

 

루벤만큼 비극적이지는 않지만 캐먼의 불행 역시 만만치 않았다. 평소 사람 만나기를 좋아했던 캐먼은 한 모임에서 소련 사람 둘을 만나 방사성동위원소인 인32의 치료적 가치에 대해 조언을 해줬다. 그 뒤 이들은 감사의 뜻으로 캐먼에게 식사대접을 했다. 캐먼은 이런 행동이 미국 정보당국의 감시 대상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캐먼은 버클리방사선연구소에서 해고됐고(본인은 영문도 모른 채) 한동안 다른 곳에도 취직하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대학이 정상을 찾아가던 1946년 당시 35세로 승부를 걸만한 연구주제를 모색하고 있던 캘빈은 저명한 물리학자의 제안이 일생일대의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직감하고 얼른 받아들였다. 캘빈은 연구소에 생유기실험실을 차리고 생화학자인 앤드류 벤슨 박사, 대학원생 제임스 바삼과 함께 광합성 대사물을 규명하는 연구에 뛰어들었다.

 

탄소14를 이용한 기발한 실험 설계와 이를 검증하는 실험을 반복해 4년 만에 이들은 마침내 식물이 물과 이산화탄소를 재료로 해서 유기분자를 만드는 광합성 핵심 경로를 밝혀 1950년 학술지 ‘생물화학저널’에 발표했다. 그 뒤 수년에 걸친 추가 연구로 전모가 드러났고 이 과정을 도식화한 그림은 오늘날 ‘캘빈회로(Calvin cycle)’로 불리고 있다. 캘빈은 이 업적으로 1961년 노벨화학상을 단독으로 수상했다.

 

광합성은 크게 두 단계로 나뉜다. 먼저 빛이 있어야 하는 ‘명반응’은 물분자를 수소이온과 전자로 쪼개는 과정으로 이때 부산물로 산소분자가 나온다. 1940년대 초 캐먼과 루벤이 건드렸던 영역이다. 다음은 빛이 필요 없는 ‘암반응’으로 명반응에서 만들어진 고에너지 전자로 이산화탄소를 환원시켜 유기분자를 만드는 과정인 캘빈회로다.



합성생물학 기법 총동원


2000년대에 이르러 광합성의 복잡한 과정이 거의 규명이 되자 몇몇 과학자들이 인공 광합성 시스템을 개발하는 연구에 뛰어들었다. 식물이 광합성으로 만든 유기분자 대부분은 식물체의 성장에 벽돌로 쓰이기 때문에 활용 효율이 낮다. 만일 인공 광합성 시스템을 만들어 물과 이산화탄소를 투입해 원하는 유기분자만 만들어 뽑아 쓸 수 있다면 온실기체인 이산화탄소를 없애면서 유용한 물질을 얻으므로 이게 바로 일석이조 아닐까.

 

그런데 자연의 광합성이 워낙 복잡한 화학반응 네트워크인 데다 설사 이를 충실히 재현한다고 해도 비효율적이라는 게 문제다. 이산화탄소를 고정하는 핵심 효소인 루비스코의 효율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따라서 몇몇 과학자들은 기존 자연의 광합성 회로에 얽매이지 않고 광합성 효율을 높이는 길을 모색했다. 새의 날갯짓을 모방하지 않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비행기를 디자인해 새보다 더 높이 더 빨리 더 오래 날게 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육상미생물학연구소 생화학·합성대사과 토비아스 에브 교수는 합성생물학 기법을 이용한 인공 광합성 시스템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합성생물학’은 생물의 구조나 촉매(효소)를 변형해 기존 자연 생물 시스템을 재구성하는 분야다. 





에브 교수팀은 지난 2016년 11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캘빈회로의 효율을 훨씬 뛰어넘는 이산화탄소 고정 경로인 ‘CETCH 회로’를 개발해 소개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무려 9가지 종에서 17가지 효소의 유전자를 가져와 이를 발현시켜 이산화탄소에서 글리옥실레이트(glyoxylate)라는 탄소원자 두 개짜리 유기분자를 만드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9가지 종 가운데 정작 식물은 애기장대 하나뿐이고 나머지는 박테리아(세균), 아케아(고세균)에 사람(동물)까지 포함된다. 광합성과 전혀 관계가 없는 생체 반응에 관여하는 효소를 가져다 필요한 곳에 부품처럼 끼워 넣어 효율성이 높은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촉매 효율이 뛰어난 효소의 유전자에 변이를 일으켜 원래 반응이 아니라 이들이 원하는 반응을 일으키게 효소의 성격을 바꾸기도 했다.

 

이들이 만든 건 광합성의 절반인 암반응을 대신하는 시스템으로 효율이 캘빈회로보다 37배나 높았다. 그러나 외부에서 명반응의 산물인 ATP와 NADPH 분자를 계속 공급해줘야 한다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었다. ATP는 암반응 과정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분자이고 NADPH는 명반응에서 나온 고에너지 전자를 담고 있는 분자로 이산화탄소 환원에 필요하다.

 

시금치 엽록체 구성성분 이용


2016년 논문을 발표한 뒤 에브 교수팀은 CETCH 회로에 명반응을 더한 진정한 광합성 시스템을 구축하는 연구를 진행했고 3년 6개월만인 5월 8일자 ‘사이언스’에 그 결과를 발표했다. 논문에서 이들은 세포 크기의 ‘엽록체 모방체(chloroplast mimic)’를 만들어 빛이 있는 조건에서 스스로 ATP와 NADPH를 합성한 뒤(명반응) CETCH 회로로 글리콜레이트(glycolate. 글리옥실레이트를 환원해 얻음)를 생산하는(암반응) 시스템을 소개했다.

 

다만 명반응을 일으키는 부분은 합성생물학이 아니라 기존 엽록체의 구조를 가져다 썼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반합성(semisynthetic) 광합성 시스템이다. 시금치의 엽록체에서 명반응이 일어나는 내막(틸라코이드)을 추출해 리포솜 안에 집어넣었다. 리포솜(liposome)은 기름 안에 있는 아주 작은 물방울로 지질(계면활성제) 단일층으로 막을 이룬 안정한 구조다. 안에 엽록체 내막과 CETCH 회로의 구성요소를 지닌 리포솜이 바로 인공 엽록체다. 이들이 만든 리포솜은 평균 지름이 92㎛로 진핵세포 크기다.

 

이 인공 엽록체 시스템에 빛을 비추자 틸라코이드에서 명반응이 일어나 ATP와 NADPH가 만들어졌고 동시에 CETCH 회로가 작동해 글리콜레이트를 생산했다. 연구자들은 미세유체공학 기술을 이용해 인공 엽록체 시스템을 대량으로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안정성과 효율성을 좀 더 높인다면 여러 분야에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제거 시스템이나 유기분자를 생산하는 시스템 또는 스스로 에너지를 만드는 합성 세포 시스템에 쓰일 수 있다. 

 

방사성동위원소인 탄소14가 만들어진 지 80년 되고 이를 이용해 광합성 메커니즘 규명한 지 70년이 되는 올해 까마득한 후배 과학자들이 합성생물학이라는 신기술을 동원해 인공 엽록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1903년 라이트 형제의 첫 동력비행은 12초 동안 36m를 날아간 데 불과했지만 훗날 수천㎞의 비행으로 이어졌다. 이렇듯 이번 첫 인공 엽록체 개발은 오늘날 식물과 몇몇 미생물에 국한된 광합성이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필자소개

강석기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8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원문기사 : http://m.dongascience.donga.com/news/view/36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