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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사이언스][강석기의 과학카페]우리는 정말 총천연색을 보고있을까' 글 입니다.

[동아사이언스][강석기의 과학카페]우리는 정말 총천연색을 보고있을까

분류 : 공동체 명 부서명 : 부서 명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자 : 2020.08.03

조회수 3852

첨부파일 : No File!
[강석기의 과학카페]우리는 정말 총천연색을 보고있을까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百聞不如一見)’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Seeing is believing)’

 

동서양 모두 시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과연 우리 눈을 그렇게 신뢰할 수 있을까. 1999년 발표된, 유명한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을 보자.

 

실험참가자들은 화면에서 흰 셔츠를 입은 3명과 검은 셔츠를 3명이 섞여 각 팀의 공을 패스하는 장면을 보고 흰 셔츠를 입은 사람끼리 패스한 횟수를 세는 과제를 수행한다. 화면에 공 두 개가 왔다갔다하므로 정신을 빠짝 차리지 않으면 놓치기 십상이다. 과제 중간 화면에 고릴라 분장을 한 사람이 등장해 정면을 향해 돌아서서 가슴을 두드린 뒤 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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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지각 실험 동영상의 한 장면. 맨 하단의 동영상으로 보면 시선 방향에서 일정 각도 범위를 뺀 나머지가 흑백으로 바뀌는 걸 볼 수 있다. 순서는 32.5도, 25도, 17.5도, 10도다. VR 헤드셋을 썼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미국립과학원회보’ 제공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百聞不如一見)’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Seeing is believing)’

 

동서양 모두 시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과연 우리 눈을 그렇게 신뢰할 수 있을까. 1999년 발표된, 유명한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을 보자.

 

실험참가자들은 화면에서 흰 셔츠를 입은 3명과 검은 셔츠를 3명이 섞여 각 팀의 공을 패스하는 장면을 보고 흰 셔츠를 입은 사람끼리 패스한 횟수를 세는 과제를 수행한다. 화면에 공 두 개가 왔다갔다하므로 정신을 빠짝 차리지 않으면 놓치기 십상이다. 과제 중간 화면에 고릴라 분장을 한 사람이 등장해 정면을 향해 돌아서서 가슴을 두드린 뒤 퇴장한다.

 


 

1999년 발표된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은 우리 지각의 한계인 ‘선택적 주의’ 현상을 여실히 보여준 대표적인 예다. 이 동영상을 본 사람의 절반이 고릴라 분장을 한 사람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대니얼 사이먼스 제공

과제가 끝난 뒤 참가자들에게 패스 횟수를 물은 뒤 추가로 “고릴라를 봤냐?”고 묻자 놀랍게도 절반은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고릴라가 9초 동안이나 화면에 등장했고 눈에 띄는 행동까지 했음에도 패스 횟수를 세느라 절반은 고릴라의 존재조차 몰랐던 것이다. 동영상을 보면 ‘설마 저걸 못 볼까?’ 싶지만 이는 우리가 고릴라 실험이라는 걸 안 상태에서 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 동영상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vJG698U2Mvo)



시야각은 180도가 넘지만 

 

사실 일상에서 이런 현상이 흔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비유적 표현이 나온 게 아닐까.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 6월 16일자에는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만큼이나 우리 시 지각의 허술함을 보여준 흥미로운 실험결과가 실렸다. 우리 눈이 보는 시야의 3분의 2, 심지어 95% 이상을 컬러에서 흑백으로 바꿔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 것일까.

 

시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범위로 사람은 좌우 시야각이 180~210도, 상하 시야각이 120도 내외라고 한다. 필자는 좌우 시야각이 180도가 약간 안 되는 것 같다. 즉 시선을 정면에 둔 상태에서 선서를 할 때처럼 한쪽 팔을 올려 손을 귀 옆에 두면 안 보이고 천천히 앞으로 내밀어 감지되는 순간 멈춰 수평으로 이동해보면 눈보다 살짝 앞이다.





물론 우리는 평소 시야의 경계선을 의식하지 못한다. 컴컴한 극장의 밝은 스크린처럼 시야 밖과 시야 안이 선명하게 나뉜다면 꽤 불편할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가 주의해서 보고자 하는 대상이 시야의 중심부에 놓이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나머지는 ‘주변부’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주목하는 대상이 이동하면 설사 시야를 벗어나지 않았더라도 시선 또는 고개가 따라 돌아간다. 시야의 중심부에서만 제대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 우리 눈은 시야 중심의 대상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예를 들어 색채를 지각하는 원추세포는 시선의 시각 정보가 들어오는 망막의 중심와(황반)에 집중돼 있다. 그럼에도 망막 전반에 원추세포가 분포해 있어 시야 전 범위에서 색 정보를 입력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미국 다트머스대 심리뇌과학과 캐롤린 로버트슨 교수팀은 시야 중심부와 주변부에 대한 주의력 차이가 대상의 형태나 존재 지각 여부뿐 아니라 색 지각 여부에도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시야 주변부의 색을 서서히 흑백으로 바꿀 때 사람들이 모를 수도 있지 않을까. 만일 그렇다면 그 범위는 어는 정도일까.

 

 

화면 대부분 흑백으로 바뀌어도 몰라






연구자들은 실제 상황으로 착각할 만큼 영상의 몰입도가 높은 가상현실(VR) 헤드셋을 사용했다. 이 헤드셋을 착용한 실험참가자는 시선을 아무 데다 둬도 즉각 이를 반영한 영상을 접하므로 자신이 가짜를 보고 있다는 사실도 잊을 정도다. 물론 헤드셋에는 착용자의 시선을 추적하는 장치가 있다.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에게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시선을 두라고 부탁한 뒤 20초 짜리 실험을 시작했다. 처음 7초는 천체가 컬러인 원 화면이다. 그 뒤 5초 동안 시선 중심부를 제외한 주변부의 색을 서서히 없앤다. 그 결과 12초부터 20초까지 8초 동안 주변부는 완전히 흑백이다. 이 동안에도 시선 방향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흑백으로 바뀌거나 유지되는 주변부도 이에 맞춰 바뀐다.

 

연구자들은 시선 중심부의 면적을 달리하며 위의 실험을 진행해 주변부가 흑백이 된 걸 지각한 사람의 비율을 조사했다. 그 결과 시선 방향에서 10도 이내 영역을 제외한 나머지가 흑백으로 바뀌어도 참가가 10명 가운데 3명이 알아차리지 못했다. 10도 범위는 전체 시야 면적의 5%가 채 안 된다. 참고로 시선에서 90도 이내 영역이 반구다. 

 

시선 방향에서 17.5도 이내 영역을 제외한 나머지가 흑백으로 바뀌는 조건에서는 절반이 알아차리지 못했고 25도에서는 65%, 32.5도에서는 83%가 알아차리지 못했다. 모니터에서 동영상을 보면 과연 그럴까 싶지만, 참가자들처럼 가상공간 헤드셋으로 본다면 모를 일이다.






다음으로 연구자들은 참가자 20명을 대상으로 주변부의 색이 흑백으로 바뀔 거라고 알려준 뒤 이를 지각하는 순간 버튼을 누르게 했다. 각도를 달리한 반복 실험 결과 참가자들이 주변부의 색 변화를 알아차렸을 때 평균 각도가 37.5도로 나타났다. 의식을 하더라도 시선 방향에서 37.5도가 벗어나는 시야에서는 색 정보를 지각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는 전체 시야의 3분의 2가 넘는 면적이다.    

 

우리가 시야의 중심부를 뺀 나머지의 대부분에서 색을 보지 못한다는 건 다소 충격적인 결과이지만 이는 정보처리의 효율성 관점에서 타당한 작동방식일지도 모른다. 대략 반구에 해당하는 시야 범위 전체를 정교하게 볼 수 있다면 데이터 처리에 과부하가 걸리고 정보 과잉으로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이다. 따라서 중심부만을 제대로 보고 주변부는 대충 보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다. 

 

선택적 주의 현상의 대표적인 예인 ‘보이지 않는 고릴라’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실험은 보이지 않는 고릴라보다는 오히려 착시와 더 가까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는 마치 숨은 그림 찾기처럼 실험 의도를 알고 보면 ‘보이는 고릴라’가 되지만 주변부가 컬러에서 흑백으로 바뀌는 현상은 알고도 여전히 속는 착시처럼 그렇게 된다는 얘기를 들어도 여전히 시야의 많은 영역에서 지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사방팔방 CCTV와 블랙박스가 있어 문제가 생기면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되지만 이런 게 거의 없던 과거에는 목격자의 증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목격자들은 작정하고 본 게 아니다. 시선의 중심부가 아니라 주변부에서 본 장면이라는 말이다. 목격자가 ‘본’ 대상의 색이 결정적인 증거로 채택되면서 억울하게 범인이 된 사람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원문기사 : http://dongascience.donga.com/news/view/37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