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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 저그는 기생충과 사촌 관계?' 글 입니다.

스타크래프트 저그는 기생충과 사촌 관계?

분류 : 공동체 명 부서명 : 부서 명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자 : 2006.02.15

조회수 5552

첨부파일 : No File!
스타크래프트 게임 매뉴얼에 의하면 ‘저그’는 고대의 위대한 종족인 젤-나가의 유전자 조작에 의해 태어난 생물체이다. 즉 젤-나가가 화산 행성 제러스에 살고 있는 곤충형 생명체에게 숙주 동물의 살을 파고 들어가 숙주와 결합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 것이 바로 저그이다. 따라서 저그는 기생생물 또는 기생충(parasite)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기생충이라고 하면 회충과 같은 기생연충만 생각하겠지만, 말라리아와 같은 원충, 결핵균과 같은 박테리아, 에볼라 바이러스와 같은 바이러스도 모두 넓은 의미에서는 기생충에 해당된다.

저그는 과학 기술이나 문명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뛰어난 적응력을 바탕으로 악조건에서도 엄청나게 번성할 수 있는 종족이다. 이는 지구에 존재하는, 저그족의 친척(?), 미생물들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미생물들은 지하 깊은 곳의 바위 속에서부터 성층권까지, 또, 남극의 얼음 속에서부터 바다 속의 뜨거운 열수공까지 지구 어디에서나 발견된다. 심지어 사람의 피부를 순식간에 녹일 수 있는 강한 산 속에서도 생존이 가능한 미생물도 있다. 일부 곰팡이는 철이나 황과 같은 무기물을 먹고 살며, 알루미늄으로 된 연료통에 구멍을 내고, 플로피 디스크의 데이터를 망가트리는 짓도 한다. 저그의 패러사이트가 생물체 유닛이 아닌 배틀크루저나 캐리어에 걸릴 수 있는 것도 이처럼 금속을 먹는 미생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저그’하면 영화 <에이리언Alien, 1979>의 외계인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사실 히드라와 에이리언은 많이 닮았다). 에이리언은 인간의 몸 속에서 배를 찢고 태어나는 기생생물이다. ‘저그’의 경우 퀸의 스폰 브루들링스(Spawn Broodlings, 브루들링 낳기)는 홀씨를 적에게 던져 숙주의 체내에서 뚫고 나오게 하는 기술로 에이리언의 번식 방법과 유사하다. 이러한 방법으로 번식하는 생물은 의기생자 또는 포식기생자(parasitoid)라고 부르는데, 기생파리나 기생벌이 이러한 생물에 속한다. 이들을 포식기생자로 부르는 것은 많은 기생생물이 숙주를 죽이지 않는데 반해서 이들은 숙주를 갉아먹어 언제나 숙주를 죽여 버리기 때문이다.
포식기생자는 영화 속 에이리언과 같이 숙주에게 매우 잔인한 생물체인데 숙주 역시 그리 호락호락하게 당하지는 않는다. 기생벌이 숙주가 되는 유충의 체내에 알을 집어넣으면 유충의 면역계가 이를 공격하여 알을 죽인다. 이 때문에 기생벌은 숙주가 될 유충의 몸 속에 알과 함께 수백만 마리의 바이러스 덩어리를 집어넣는데 유충의 몸 속으로 들어간 바이러스는 주변의 세포들을 공격하여 면역계를 혼란에 빠트린다. 이러한 혼란 상태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지만 이때는 이미 기생벌의 알이 유충의 면역계를 피해 안전하게 정착한 후이다. 기생벌의 바이러스 덩어리는 디파일러(Defiler)의 다크 스웜(Dark Swarm)이 적의 공격으로부터 저그의 유닛을 보호해 주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영화 <패컬티The Faculty, 1998>에서는 사람의 몸 속으로 들어가 사람을 조종하는 외계의 기생생물이 등장한다. 이 또한 몸을 뚫고 튀어나오는 생물체 못지않게 끔찍한데, 이러한 생물체들이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연에는 숙주의 행동을 조종하는 기생충이 많이 존재한다.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쥐는 고양이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게 되며, 사람의 경우에도 일탈 행동을 할 가능성이 증가하는 등 인격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소낭충에 감염된 게는 패컬티에서 외계의 생물체에게 조종당하는 인간과 같이 소낭충을 위해 봉사하는 꼭두각시로 전락해 버리게 된다.
스타크래프트에서 테란의 유닛인데도 불구하고 저그의 명령을 따르는 자살 특공대가 되어 버리는 인페스티드 테란(Infested Terran, 감염된 테란)도 이와 같은 사례의 하나라 하겠다.

페니실린이 개발되었을 때 사람들은 박테리아에 의한 전염병을 완전히 정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들떠 있었다. 실제로 페니실린을 비롯한 다양한 항생제의 등장으로 폐렴이나 결핵 등과 같은 질병은 서서히 위력을 잃었으며, 1980년대까지 전염성 질환에 의한 사망자는 계속 줄어들었다. 그러나 내성균의 등장으로 이러한 상황은 서서히 반전되고 있고, 우리는 항생제가 등장하기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페니실린 내성균에 대응해 메티실린을 개발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메티실린 내성 황색 포도상구균(MRSA)이 등장했으며 더욱이 MRSA는 당초 메티실린에 내성을 보이는 균을 부르는 명칭에서 오늘날에는 멀티 내성을 가지는 균을 부르는 명칭으로 사용될 만큼 다양한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MRSA를 치료하는 데는 가장 강력한 항생제로 불리는 반코마이신이 사용되는데 반코마이신의 개발로 박테리아와의 전쟁에서 인류가 승리감을 맛볼 틈도 없이 1996년 일본에서는 반코마이신에도 내성을 가진 슈퍼 박테리아(VRSA, 반코마이신 내성 황색포도상구균의 별칭)가 등장했다.
플레밍은 노벨상 수상 소감에서 박테리아를 완전히 죽일 만큼 페니실린을 투여하지 않으면 내성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 바 있다. 저그를 완전히 끝장 내지 않으면 순식간에 무서운 존재가 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박테리아의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그는 진화를 중단하면 그것이 곧 자멸의 길임을 알고 있기에 에볼루션 쳄버(Evolution Chamber, 진화 실험실)를 통해 끊임없이 진화를 한다. 이와 같이 자연의 끊임없는 진화의 군비 경쟁을 ‘붉은 여왕 가설’이라고 부르는데 기생충의 세계를 놀랍도록 꿰뚫고 있는 스타크래프트에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글 : 최원석 – 과학칼럼니스트) @4d4e81d3f9219886bcadb3dc9b503f82@h*@4d4e81d3f9219886bcadb3dc9b503f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