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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를 가르는 지혈의 과학' 글 입니다.

생사를 가르는 지혈의 과학

분류 : 공동체 명 부서명 : 부서 명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자 : 2007.02.20

조회수 4668

첨부파일 : No File!
최근 개봉한 영화 ‘묵공’, 1998년 ‘라이언일병 구하기’, 이보다 앞선 1956년 ‘전쟁과 평화’ 등 전쟁 영화는 참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영화가 참혹해도 실제 전쟁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실제 전장보다 피가 덜 보이기 때문이다. 포탄이 난무하는 곳에서 피 흘리는 병사는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다. 그들에게 흐르는 피는 공포인 동시에 곧 죽음을 의미한다.

더 큰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출혈이다. 내출혈은 야전에서 군인이 사망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후송하는 동안 압박붕대로 부상병을 아무리 감싸도 내출혈은 멈추지 않는다. 만약 부상당하자마자 내출혈을 멈출 수 있다면 생명을 잃거나 사지를 절단해야 하는 일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생사를 가르는 지혈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먼저 위험한 전투를 수행하는 군인들을 위한 지혈장비가 있다. 미 국방부는 전장에서 병사들이 스스로 지혈할 수 있는 휴대용 장치를 개발하여 보급할 계획을 세웠다. 바로 ‘초음파 지혈대’다. 초음파 지혈대는 작은 장치로 간단한 훈련을 받은 병사면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게 고안됐다.

가정용 혈압계처럼 초음파 지혈대를 상처 부위에 묶으면 초음파 형상 센서가 ‘도플러 효과’를 이용해 출혈을 일으키는 상처를 찾아낸다. 그 뒤 치료 센서가 상처 부위에 ‘고강도 자동 집중 초음파’(HIFU, High Intensity Focused Ultrasound)를 발사해 상처 부위의 혈액을 응고시키고 피를 멎게 한다. 사실 HIFU는 전혀 새로운 기술은 아니며 이미 암, 섬유종, 담석증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

어떻게 초음파가 지혈작용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피가 응고되는 일반적인 원리를 알아야 한다. 혈액 응고에는 최소 13가지의 인자들이 관여한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혈액이 응고하지 않지만 최종 목적은 피브리노겐이라는 단백질 전구체를 피브린 단백질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가는 섬유 조직인 피브린은 뜨개질을 하듯이 그물을 엮어 적혈구, 백혈구 등 혈구들을 서로 엉기게 해 피가 응고되도록 만든다. 혈관의 결합조직 콜라겐도 함께 작용해 응고된 피가 상처부위를 막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지혈 작용의 핵심은 피브린을 만드는 것이다.

고강도 초음파는 상처 부위를 가열해 피브린이 서로 엉기는 것을 촉진시키는 동시에 혈관의 결합조직 단백질인 콜라겐이 조직을 ‘용접’하는 것을 도와준다. 또 초음파는 혈액 속에 거품을 만들어 여기서 형성된 자유라디칼이 지혈작용을 가속시키도록 도와준다. 이 초음파 지혈대가 보급되면 과도한 출혈로 사망하는 병사가 많이 줄어들 것이다.

전장에서 지혈이 신속한 응급처치라면 외과병원에서는 보다 전문적인 지혈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외과 의사들은 지혈핀셋으로 혈관을 누르거나 약물을 이용해 혈관을 수축시키는 방법으로 지혈한다. 하지만 이 방법은 그리 효과적이지 못해서 의사들은 수술 시간의 반을 지혈에 써야 한다. 따라서 이와 다른 획기적인 지혈법이 필요했다. ‘나노지혈’로 불리는 그 방법은 우연히 발견됐다.

2001년 아직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러틀레지 엘리스-벤케(Rutledge Ellis-Behnke)는 생쥐에 뇌졸중을 일으킨 후 그 자리에 짧은 단백질 조각인 펩티드 용액을 주사했다. 엘리스-벤케 연구팀의 실험 목적은 펩티드가 뇌졸중으로 손상된 신경조직을 재생시키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초기 실험에서 그들은 손상된 뇌 영역이 재생되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이들은 펩티드 용액을 주사한 쥐들은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연히 관찰할 수 있었다.

이들은 홍콩, 베이징, 미국에서 계속된 실험을 통해 펩티드가 스스로 조합돼 젤의 형태가 되며 나노 단위의 벽을 형성해 상처를 메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기에 필요한 시간은 단 15초다. 일단 상처가 아물면 펩티드 젤은 아미노산으로 분해 돼 세포 조직 재생에 쓰이고3~4주가 지난 뒤 오줌을 통해 배출되기 때문에 독성과 부작용이 없다. 게다가 상처의 크기, 형태에 상관없이 지혈 효과가 나타난다는 점도 놀랍다.

엘리스-벤케 그룹의 연구는 2006년 3월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 회보’와 같은 해 10월 ‘나노의학’(Nanomedicine)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나노 펩티드 단백질 섬유는 뇌졸중, 모야모야 같은 특수한 뇌출혈을 비롯한 내출혈 치료와 수술시 지혈작용에 쓰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나노 펩티드 단백질 섬유는 언제쯤 사람에 적용될 수 있을까? 펩티드 조각이 혈액을 응고시키는 명확한 메커니즘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현재 돼지를 이용하여 같은 실험을 하고 있는 엘리스-벤케는 임상실험이 최소한 3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으며, 다른 과학자들은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획기적인 발견이 있어도 사람에게 적용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 법. 성급한 마음을 접고 성과를 기대하며 기다리자.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 앞에 서면 이런 경구를 자주 본다. 하지만 오줌보다 더 소중한 것은 젊은이의 핏방울이며 그들의 생명이다. 이것은 초음파 지혈대나 나노 펩티드 단백질만으로 지킬 수 없다. 생명을 살리는 것은 땀방울도 핏방울도 아니다. 오히려 평화를 갈구하는 한 줄기의 눈물이다. (글 : 이정모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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