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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이 비만을 만든다고?' 글 입니다.

세균이 비만을 만든다고?

분류 : 공동체 명 부서명 : 부서 명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자 : 2007.03.12

조회수 55519

첨부파일 : No File!
어른 한 명의 몸을 구성하는 전체 세포 수는 약 60조 개. 얼마나 큰 수인지 쉽게 상상이 안 되는 어마어마한 수다. 그런데 우리 몸에는 세포 수보다 더 많은 세균이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우리 몸에 살고 있는 세균의 수는 놀랍게도 100~1000조 개. 무게로 치면 약 1kg이나 된다. 주인보다 손님이 더 많은 셈이니 이만저만한 ‘주객전도’(主客顚倒)가 아니다.

‘질병을 일으키는 대표주자’로 여겼던 세균이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몸에 함께 사는 세균은 해를 끼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을 준다. 악어새와 악어의 관계처럼 도움을 주고받는 이런 관계를 ‘공생’(symbiosis)이라고 한다. 세균은 소화기관은 물론이고, 생식기, 신장, 허파, 입에도 살고, 심지어 피부와 눈에도 살고 있다. 이중 가장 많은 수는 대장과 소장에 존재한다. 가장 많이 연구돼 있는 장(腸)에 사는 세균과 우리 몸의 공생을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알 것은 장이 동거를 허락하는 세균은 따로 있다는 사실이다. 유산균은 1000만 마리가 한꺼번에 들어와도 아무 탈이 안 나지만 살모넬라균, 비브리오균, 황색포도상구균 등 식중독균이 들어오면 우리 몸은 즉각 이들을 죽이는 면역 체계를 가동한다. 실제 사람의 장에 공생하는 세균은 약 500종류뿐이다. 세균은 사람 뿐 아니라 다른 모든 동물과도 공생하고 있다. 사람과 동물의 장에 공통된 ‘공생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공생 메커니즘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세균을 살리고 죽일까를 구별하는 것이다.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화여대 이원재 교수는 이 세균을 구별하는 장치를 유전자라고 보고 ‘공생 유전자’를 찾고 있다. 공생 유전자란 특정한 하나의 유전자가 아니라 공생에 관여하는 모든 유전자를 말한다. 공생은 쌍방간의 작용이기 때문에 공생 유전자는 장의 상피세포와 세균에 각각 존재할 것이다.

세균에 있는 공생 유전자를 밝히기 위해서는 유전자가 무작위로 파괴된 세균들을 장에 집어넣는다. 이중 정상적인 공생을 하지 못하는 세균이 있다면 공생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파괴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세균을 골라내고 세균에 어떤 유전자가 파괴되었는지를 조사해서 공생 유전자를 찾아낸다.

반대로 장의 상피세포에 있는 공생 관여 유전자를 밝히기 위해서는 장의 유전자를 여러 형태로 변형시켜 세균과의 공생을 조사하면 된다. 이때 장의 유전자를 변형하는 것은 세균보다 어렵기 때문에 이원재 교수팀은 초파리를 이용한다. 초파리는 사람의 유전자와 비슷한 면이 많기 때문에 더욱 유용하다. 초파리의 전체 1만3000개 유전자를 하나씩 손상시켜 어떤 유전자가 파괴됐을 때 공생에 문제가 생기는지 조사한다.

장내 세포 간에 이온 전달과 항상성 유지에 관여하는 Mocs1 유전자, 장내 세균을 인식해 장의 상피세포에 신호를 전달하는 데 관여하는 PGRP-LC 유전자와 PGRP-LB 유전자 등 초파리의 공생유전자는 많이 밝혀진 상태다. 앞으로 사람에 있는 공생 유전자를 알게되면 각 사람마다 적합한 ‘맞춤형 유산균’을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장은 공생을 허락한 세균이라 할지라도 그 숫자를 적절하게 조절한다. 아무리 유익한 세균이라도 그 수가 너무 많으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균을 죽이는 물질을 분비하는데 대표적인 것은 ‘듀옥스’라는 효소다. 듀옥스는 활성산소를 만들어 장에 공생하고 있는 세균을 죽인다. 만약 듀옥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장내 세균은 최대 1000배 이상 늘어 동물은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듀옥스와 같은 물질은 우리 몸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적절한 양이 분비돼야 하는데 이 양이 지나칠 경우 만성 대장염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의 분비를 잘 조절해 질병을 예방하려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반면 인체가 공생하는 세균을 조절하듯 세균도 인체를 조절한다. 이와 연관된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있다. 바로 장에 공생하는 세균이 비만을 유도한다는 사실이다. 장내 공생하는 세균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페르미쿠테스’(Firmicutes) 속 세균과 ‘박테로이데테스’(Bacteroidetes) 속 세균이다.

연구 결과 뚱뚱한 사람일수록 페르미쿠테스 속 세균이 많아 90%를 차지했다. 비만 환자가 정상체중으로 돌아오면서 페르미쿠테스 속 세균의 비율은 73%로 떨어졌고, 박테로이데테스 속 세균의 비율이 15%로 늘었다. 페르미쿠테스 속 세균이 비만을 유도할지 모른다는 의심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세균이 전혀 없는 무균생쥐에 비만생쥐의 내장에 사는 세균들을 이식한 결과 2주만에 체지방이 47%나 증가했다. 또 무균생쥐에 고지방 음식을 먹여도 비만생쥐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결국 칼로리를 흡수하는 정도가 세균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과학자들은 비만의 원인으로 게으름이나 식탐 이외에도 생물학적인 원인을 주목해 왔는데 그 근거가 제시된 셈이다. 앞으로 장내 세균을 조절하는 것을 통해 비만을 치료하는 길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

인체와 세균은 이처럼 서로가 서로를 조절하며 공생하고 있다. 인체가 자신에게 유리한 세균을 선별하고 세균의 수를 조절하면서 이득을 취하는 것처럼, 세균도 인체의 조건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조절한다. 인체와 세균의 줄타기가 절묘하게 균형을 잡을 때 최선의 건강 상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도 자기 목소리만 높이기보다는 이런 균형감각을 배워야하지 않을까. (글 : 김정훈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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