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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과 색을 내 맘대로~ 식물 디자인!' 글 입니다.

모양과 색을 내 맘대로~ 식물 디자인!

분류 : 공동체 명 부서명 : 부서 명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자 : 2007.04.23

조회수 4722

첨부파일 : No File!

파란장미는 없다. 현재 시장에 나온 파란장미는 백장미에 색소를 올려 만든 가짜다. 수많은 육종학자들이 파란장미의 꿈을 품고 도전했지만 모조리 실패했다. 장미에는 파란색소를 만드는 유전자가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파란장미의 꽃말이 ‘불가능’일까. 그런데 불가능이라고 여겼던 파란장미가 만들어져 시판을 앞두고 있다.

파란장미는 원래 자연에 없는 식물이다. 이렇게 없던 식물을 새로 탄생시키는 연구 분야를 ‘식물 분자 생체 디자인’(Plant Molecular Biodesign, 이하 식물 디자인)이라고 부른다. 한 마디로 식물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디자인 하겠다는 것이다. 다소 황당하게 생각되는 이 연구에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겠다. 첫째는 식물의 모양이고, 둘째는 식물의 색이다. 식물의 모양과 색을 어떻게 바꿀 수 있다는 말인가?

먼저 식물의 모양을 바꾸려는 시도부터 살펴보자. 식물의 모양을 디자인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기관은 잎이다. 단풍나무, 은행나무, 야자수가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해 보자. 다른 무엇보다 잎 모양이 떠오를 것이다. 식물의 전체 모양은 잎이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꽃잎은 잎이 변형된 기관이다. 결국 잎 모양과 발생 분화 과정을 이해하면 식물 전체의 모양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과학자들은 먼저 잎의 길이와 폭을 맘대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아대 분자생명공학부 김경태 교수팀은 애기장대 연구를 통해 잎의 길이와 폭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찾아 이 유전자를 조절하는 법을 알아냈다. 애기장대 안에 있는 ROT3 유전자는 ‘브라시노스테로이드’라는 식물 성장 호르몬의 활성을 조절해 잎의 길이에 영향을 미친다. 또 AN 유전자는 세포골격을 조절해 세포의 뼈대를 변화시켜 잎의 폭에 영향을 미친다.

길이와 폭 외에도 잎의 좌우를 대칭되게 하는 유전자, 윗면과 아랫면을 다르게 하는 유전자, 편평함과 볼록함을 결정하는 유전자 등을 찾고 조절하는 법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이들 유전자의 기능을 알아낸다면 잎의 모양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연구팀은 토마토 잎의 좌우대칭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조작해 파슬리 잎처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꽃 모양도 디자인할 수 있다. 꽃 모양에 대한 가장 고전적인 연구는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메이에로비츠 교수팀이 제안한 ABC 모델이다. 이 모델은 A 클래스, B 클래스, C 클래스에 해당하는 유전자의 조합에 의해 꽃을 이루는 꽃받침, 꽃잎, 암술, 수술이 결정된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A 클래스 유전자만 단독으로 발현되면 꽃받침만 있는 꽃이 되고, C 클래스가 없으면 꽃받침, 꽃잎, 암술, 수술이 모두 꽃잎으로 변한다. 이 모델을 이용하면 꽃 모양을 다양하게 바꿀 수 있다.

식물의 색을 디자인하는 연구는 모양을 디자인하는 연구보다 더 빠르게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이 분야는 특히 화훼 분야에서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육종학자의 오랜 꿈이었던 파란장미다.

일본 산토리사의 자회사인 호주 플로리진 연구팀은 장미에는 파란색을 내는 색소가 없기 때문에 다른 식물의 유전자를 도입했다. 꽃 색깔은 주로 안토시아닌 계열의 색소가 조합돼 결정된다. 안토시아닌 색소에는 빨간색을 내는 시아니딘, 주황색을 내는 펠라고니딘, 파란색을 내는 델피니딘이 있는데 모두 DHK라는 물질이 각각 다른 경로로 변형돼 만들어진다.

장미에는 DHK를 델피니딘으로 바꿔주는 효소가 없다. 이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 일명 ‘블루 진’(Blue gene)이 없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페튜니아에서 최초로 이 블루 진을 찾아냈다. 페튜니아의 블루 진을 장미와 카네이션에 적용했는데 이상하게도 카네이션에서는 작동했지만 장미에서는 작동되지 않았다. 파란 카네이션이 먼저 나온 이유다.

그 뒤 수많은 꽃의 블루 진을 장미에 도입해 결국 2004년 푸른 장미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제비꽃과의 풀 팬지의 블루 진이 장미와 맞아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만든 장미는 ‘파란장미’라고 하기엔 부족했다. 파란색이 아니라 연보라색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더 선명한 파란색의 장미를 만들기 위해 후속연구를 진행 중이며 빠르면 올해 내로 파란장미가 시판될 예정이다. 파란장미 다음 목표는 ‘검은 장미’라고 한다.

사실 식물 디자인은 유전공학의 한 분야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기존 유전공학이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는 일에 초점을 두었다면 식물 디자인은 창의력과 미적 감각을 더해 새로운 모양을 창조하는 일에 초점을 둔다.

앞으로 식물의 모양과 색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더운 여름 모자 모양의 잎을 따서 쓴다던지, 여름철 하루 입을 시원한 잎 셔츠를 만들 수도 있다. 하트 모양의 꽃잎을 가진 장미로 사랑을 고백하는 건 어떤가. 더 나아가 편평하게 만들고 형형색색 물들인 식물 잎을 벽지처럼 발라 자연친화적인 집을 만들 수도 있다.

“식물을 있는 그대로 감상하면 되지 왜 굳이 새로운 모양으로 만들어야 하는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불가능’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과학자들의 도전정신을 자극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불가능’을 꽃말로 가진 파란장미처럼. (글 : 김정훈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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