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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만드는 만능 인쇄시대' 글 입니다.

무엇이든 만드는 만능 인쇄시대

분류 : 공동체 명 부서명 : 부서 명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자 : 2007.04.27

조회수 4471

첨부파일 : No File!
대부분의 사람들은 “찌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인쇄물을 토해내는 잉크젯 프린터보다 인쇄가 조용한 레이저 프린터를 더 선호한다. 시장점유율에서 잉크젯 프린터는 레이저 프린터에 뒤쳐진 지 오래다. 그러나 역사 속의 유물로 사라질 줄 알았던 ‘잉크젯 프린터’가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어떻게 ‘구닥다리’가 된 잉크젯 프린터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것일까?

그건 잉크젯 프린터가 영원한 파트너일 것만 같았던 종이를 떠나 전자산업과 생명공학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같은 각종 전자제품을 한 번에 찍어내듯 만들고, 인체의 피부 조직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데 잉크젯 프린팅 기술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핵심 아이디어는 바로 ‘젯’(jet)에 있다. 단어 뜻 그대로 잉크를 분사하는 기술을 활용한다.

잉크젯 프린터는 카트리지에 든 잉크를 분사시켜 이미지를 만든다. 프린터가 전기신호를 보내면 압전소자가 늘어나 주사기처럼 잉크를 노즐 앞까지 밀어낸다. 그 뒤 재빨리 전류를 차단하면 압전소자와 함께 잉크도 제자리로 돌아가지만, 노즐 앞까지 밀려났던 잉크는 작은 방울이 돼 떨어진다. 전류의 세기를 조절하면 분사되는 잉크방울의 크기와 양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DNA칩을 만들 수 있다. DNA칩은 유리 기판에 DNA를 촘촘히 심은 다음 혈액과 반응시켜 유전자의 발현 여부를 알아보는 장치다. DNA칩을 만드는 방법은 유전자 시료를 어떻게 심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 가운데 잉크 분사 기술을 이용하면 DNA칩 표면에 나있는 미세한 홈에 원하는 양만큼 DNA를 뿌릴 수 있다. 전류의 세기를 변화시키면서 시료의 양을 매우 정확하게 조절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세계적인 프린터 제조업체 휴렛패커드(HP)의 자회사 애질런트테크놀로지는 2002년 모기업인 HP의 대형 잉크젯 프린터를 이용해 DNA칩을 대량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2005년 캐논 역시 자사의 잉크젯 프린터 기술을 이용해 DNA칩을 개발했다. 캐논에 따르면 한번에 4피코리터(피코리터=1조분의 1리터)라는 극소량을 분사하기 때문에 1000가지 시료를 동시에 기판 위에 뿌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덕분에 검사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대폭 줄였다.

잉크젯 프린팅 기술이 한 단계 더 발전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2002년 프랑스 니스에서 열린 국제 로봇 알고리즘 워크숍에서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존 캐니 교수는 ‘3차원 잉크젯 프린팅 기술’을 제안했다. 한 가지 색다른 점은 잉크젯 카트리지에 잉크가 아닌 전자제품에 쓰이는 고분자를 집어넣는 것이다.

지금까지 3차원으로 제품을 생산하던 기술은 리소그래피(lithography)다. 리소그래피는 실리콘 웨이퍼 위에 복잡한 회로의 설계 패턴을 옮기기 위해 짧은 파장의 빛을 이용해 서로 다른 회로로 모양을 층층이 쌓는다. 하지만 금처럼 값비싼 재료들을 웨이퍼 위에 뿌린 뒤 필요한 부분만 남기고 깎아내야 하기 때문에 비용 낭비가 심했다. 마치 바위를 정으로 깎아 조각상을 만드는 셈이다.

반면 ‘고분자 폴리머 카트리지’가 채워진 3차원 프린터는 나노 크기의 벽돌을 차곡차곡 쌓는 방식이다. 그만큼 제품을 조립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모든 제품을 한 번에 ‘찍어서’ 제작할 수 있다. 현재 고분자 폴리머 카트리지로는 수 nm(나노미터=10-9미터)크기에서 3차원 인쇄가 실험적으로 가능하지만 앞으로 5~6년 정도 지나면 수 cm 크기의 제품도 생산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 나아가 잉크젯 기술은 인체 조직을 만드는 데도 사용될 것이다. 영국 맨체스터대의 브라이언 더비 교수팀은 잉크젯 프린팅 기술로 인간의 섬유싹세포와 골아세포를 증식시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각각 근육조직과 뼈를 형성하는 세포를 인쇄하듯 여러 겹의 얇은 층으로 쌓는데 성공한 것이다.

카트리지에 세포를 주입하고 이를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는 무독성 젤 위에 분사해 원하는 형태의 세포층을 찍어냈다. 세포층 위에 다시 얇은 젤 층과 세포층을 반복해 쌓아올려 입체적인 구조를 만들면 젤 층은 시간이 지나면 분해돼 사라지고 결국 세포들이 서로 결합한 생체조직만 남게 된다. 이런 방법으로 인공 장기를 만들면 기존의 방법보다 시간이 훨씬 절약된다.

살아있는 조직 하나를 만드는데 하루면 될 정도로 세포 성장 속도도 빨랐다. 더비 교수팀은 인공피부뿐 아니라 연골 같은 골격을 만들 수 있도록 두께가 수 cm에 이르는 3차원 잉크젯 프린터를 개발하고 있다. 만약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화상을 크게 입더라도 허벅지나 엉덩이 살점을 떼어 이식하는 대신 주변의 피부세포를 ‘인쇄’하면 된다.

하지만 잉크젯 프린팅 기술의 한계와 위험도 있다. 잉크젯 기술로 찍어낸 전자제품은 한 번 고장나면 부품을 교체할 수 없기 때문에 수리할 수 없다. 전자회로를 대체할 고분자는 기존 실리콘보다 가격이 싸지만 반도체로서 성능이 떨어진다. 인체에 적용하려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더 늘어난다. 신장 같이 큰 장기의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충분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프린팅 기술로 세포가 빨리 증식할 경우 비정상적으로 성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무병장수와 영생(永生)을 꿈꾸는 이상, 머지않아 깨끗한 얼굴 피부를 인쇄해 하루를 시작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인체에 생기는 질병에서도 자유로워질 것이다. 주류에 밀려난 것처럼 보였던 잉크젯 프린터가 새롭게 보이지 않는가. (글 :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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