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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생명연장의 꿈, 보존과 복원' 글 입니다.

문화재 생명연장의 꿈, 보존과 복원

분류 : 공동체 명 부서명 : 부서 명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자 : 2007.05.03

조회수 4413

첨부파일 : No File!
허버트 조지 웰즈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 ‘타임머신’에는 주인공 조지가 시간 여행 장치의 레버를 서서히 밀어올림에 따라 주변의 풍경이 시시각각 변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무들은 노쇠하고, 건물들은 풍화의 영향을 받아 점차 낡다가 마침내 무너진다. 만약 이 레버를 과거로 움직였다면 조지는 잔해가 모여 건물을 이루고 완공 당시의 모습을 되찾는 광경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지상의 모든 자연물과 인공물은 시간에 따라 풍화작용의 영향을 받고 본래의 모습을 잃는다. 낡고 사라지는 것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라면 괜찮지만 문화재라면 얘기가 다르다. 문화재의 가치는 곧 그 고유성에 있기 때문이다. 현대과학으로 시간을 되돌리기란 불가능하지만 문화재를 세월의 힘 앞에서 유지할 수 있다. 문화재를 보존하고 더 나아가 복원하는 기술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보존이란 현재 상태에서 더 이상의 손상을 막기 위한 모든 조치를 얘기한다. 보존은 엄밀한 의미에서 고유성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손상을 일으키는 원인을 문화재로부터 제거하거나 차단한다. 금속 재질 문화재는 녹과 염분을 제거하고, 서적을 비롯한 목제품이나 섬유 제품은 해충이나 곰팡이가 발생하지 못하도록 온도, 습도 등의 환경을 조절한다.

특별히 손상에 약한 문화재의 경우 화학 반응 자체를 억제하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해당 문화재를 밀폐된 공간에 넣고 그 공간을 비활성 기체로 채우는 것이다. 비활성 기체는 화학 반응을 가장 덜 일으키기 때문에 문화재를 안정적으로 보존할 수 있다.

복원은 현재 문화재의 훼손 정도가 심각해 원형에 가깝도록 보충 및 보수하는 것을 말한다. 먼저 정확한 고증을 해야 하고 다음에 문화재의 재질을 파악해 복원에 들어가야 한다. 정확한 고증이 있어야 사라진 부분을 어떻게 복원해야할 지 알 수 있고, 재질을 파악해야 적절한 복원 방법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물이 출토되면 연대 측정법을 통해 해당 문화재의 제작 연대를 파악한다. 합천군 해인사 법보전 비로자나불은 한동안 조선시대에 제작된 목불로 간주됐었다. 그러나 불상 내부에 넣어놓았던 복장유물을 확인하면서 유물 내 기록된 연호가 통일신라시대로 돼 있어 제작 시기에 관한 논란이 일었다.

학술팀은 명확한 제작연대를 밝히기 위해 AMS(질량분석이온빔가속기)를 이용해 탄소연대 측정법을 실시했다. 그 결과 법보전 비로자나불의 제작연도는 AD740~950년으로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드러났다. 탄소연대 측정법이 학술적인 논란을 가리는 근거의 한 축을 담당한 셈이다.

제작 연대를 파악해 고증에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문화재의 재질과 상태를 분석한다. 최근에는 문화재를 쇄손하지 않기 위해 X선을 이용한 비파괴검사를 많이 한다. 물체에 X선을 쪼이면 대상 물질과 상호 작용에 의해 ‘형광 X선’이라고 하는 2차 X선이 발생하는데 이 2차 X선은 원자에 따라 고유한 값을 가지므로 조성 물질의 성분과 양을 알아낼 수 있다. 문화재 재료의 정확한 조성과 비율이 복원 제작에 커다란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디지털 보존·복원도 이용되고 있다. 디지털 보존·복원이 특히 빛을 발하는 부분은 무형 문화재다. 기존의 무형 문화재의 보존 방법은 도제 시스템에 의한 전수가 거의 전부였고, 간접적으로 미디어 기기를 이용해 녹화 보존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도제 시스템은 후계자가 없을 경우 그 맥이 끊길 위험이 크다. 하지만 이제는 컴퓨터 그래픽에서 인체의 동작을 구현하고 모션 캡처 기술을 응용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춤사위나 군무의 동작 자체를 자료화하여 보존하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활용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건축물과 같은 대형 문화재를 자료화하여 이를 사이버 공간에서 재현한다. 남아있는 부분은 3차원 스캐닝 기술로 입체적인 모델을 만들고, 소실된 부분은 남아있는 사료와 도면을 기초로 제작해 이를 합치는 것이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각계와 손을 잡고 구현한 ‘디지털 한양’이나 ‘디지털 앙코르왓’은 이 같은 사이버 공간상 문화재 복원의 좋은 예이다.

하지만 보존·복원 기술의 우수함을 칭찬하기에 앞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어디까지를 정당한 복원으로 봐야하는가 이다. 문화재의 가치가 고유성에 있다면 복원을 위한 첨삭행위도 보는 이에 따라서 일종의 훼손으로 비쳐질 수 있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보존·복원 실패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것은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학자들이 수행한 불국사 석굴암 보존 작업이다. 당시 천장의 3분의 1이 무너져 흩어진 부재를 모아 조립하는 과정에서 시멘트를 썼다. 이로 인해 외부 경관이 훼손되고, 내부에 물이 차는 등 돌이킬 수 없는 오류를 남겼다.

최근에는 문화재를 복원할 때 고증이 잘못돼 후대 학자들이 쉽게 고칠 수 있도록 배려해서 작업한다. 또 관람객이 원래 문화재와 새로 넣은 부분이 구별할 수 있도록 색깔 등을 다르게 해 복원한다. 문화재 복원에는 의견 충돌이 일어나는 부분이므로 다수가 만족하고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문화재란 연구자나 어느 기관의 소유가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유산, 더 나아가 인류의 재산이기 때문이다. (글 : 김창규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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