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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 크기만한 다보탑이 있다?' 글 입니다.

세포 크기만한 다보탑이 있다?

분류 : 공동체 명 부서명 : 부서 명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자 : 2008.01.29

조회수 4679

첨부파일 : No File!
10억 분의 1을 의미하는 ‘나노’는 이제 익숙한 단어가 됐다. 샴푸부터 세탁기까지 ‘나노’라는 이름을 달고 여러 상품들이 출시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맨눈으로 볼 수 없는 나노 세계는 여전히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어렵고 심오하다는 선입견 탓에 나노는 과학자들만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나노 세계가 꼭 보통 사람의 생각 저편에 있는 건 아니다. 나노 크기의 합성수지를 ‘벽돌’처럼 쌓아올려 초소형 다보탑을 건축하는 기술이 한 예다. 현실 세계에서 건축물을 세우는 방법과 별로 다르지 않다. 중장비와 망치 대신 전자 현미경과 화학물질이 이용될 뿐이다. 흙먼지 이는 건축의 기본 원리가 첨단 나노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저명한 과학학술지 ‘네이처 머티리얼스’는 독특한 사진 하나를 소개했다. 바로 우리나라의 대표적 문화재인 다보탑이었다. 양동열 교수가 이끄는 KAIST 기계공학과 컴퓨터원용전형가공 연구실의 작품이다. 다보탑이 당시 주목받은 건 아주 작은 크기 때문이었다. 높이가 불과 20μm(마이크로미터, 1μm=100만분의 1m)에 불과했던 것. 이는 인간의 세포 크기와 비슷할 정도다.

더 놀라운 건 다보탑이 지닌 정교함이었다.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다보탑의 계단과 기둥, 지붕은 마치 경주 불국사 안에서 실제 다보탑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부드럽게 살아 있는 곡선과 가지런히 쌓여 있는 계단은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어떻게 이런 정교한 구조물을 만들었을까. 미술 조형물을 만들 때 조각과 소조가 있듯이 나노 구조물을 만들 때도 ‘깎아내기’(top-down)와 ‘쌓아가기’(bottom-up)가 있다. 깎아내기는 큰 석고를 조각칼로 깎아 형상을 만들 듯이 덩어리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낸다. 반대로 쌓아가기는 찰흙을 붙여 형상을 만들 듯이 나노 크기의 분자를 쌓아 원하는 물체를 만든다. 양 교수팀이 시도한 방법은 쌓아가기다.

양 교수팀은 작은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 스캐너로 큰 구조물을 본뜨거나 설계 소프트웨어로 3차원 데이터를 직접 그리는 방식을 쓴다. 일종의 설계도를 만드는 단계다. 그런 다음 프로그램을 사용해 전체 형상을 마치 슬라이스 치즈처럼 얇게 썬다. 마치 단층촬영을 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렇게 얻은 ‘슬라이스’ 모양과 크기 데이터를 나노 단위로 줄인다.

설계도를 얻었으면 그대로 만드는 일만 남았다. 양 교수팀은 구조물을 만드는 재료로 빛을 흡수하면 굳는 ‘이광자흡수 광경화수지’를 썼다.

먼저 기판 위에 광경화수지 한 방울을 떨어뜨린다. 그런 다음 방울의 아래 부위에 레이저 광선을 쏘여 필요한 모양대로 굳힌다. 가장 아래 슬라이스 한 층이 굳는 것이다. 나머지 방울은 여전히 액체 상태다. 그 다음 기판을 슬라이스의 두께만큼 미세하게 내린 뒤 다시 레이저 광선을 쏜다. 이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면 각 층이 차곡차곡 쌓여 전체 형상을 만들 수 있다. 남는 합성수지는 닦아내면 된다.

연구팀의 기술은 다보탑은 물론 점보기나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등을 자유자재로 만들어내는 수준에 이르러 있다. 아직은 먼 훗날의 얘기지만 연구팀은 이 기술이 몸 안을 돌아다니며 암 세포를 잡는 나노 로봇 제작의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나노 로봇을 활용하면 피부를 절개해 암 덩어리를 들어내거나 방사선 치료를 하지 않고도 암세포를 제거할 수 있다.

낭만주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어린이에게는 과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과학을 하는 취미를 주면 족하다”고 말했다. 이해하기 힘든 나노 세계도 알고 보면 그 원리가 먼 곳에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과학 현상에 눈과 귀를 기울이자. 진중하지만 흥미로운 진리를 얻을 수도 있는 일이다. (글 : 이정호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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