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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에 난 상처를 수리하라!' 글 입니다.

DNA에 난 상처를 수리하라!

분류 : 공동체 명 부서명 : 부서 명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자 : 2008.02.18

조회수 4799

첨부파일 : No File!

생명체는 세포 속의 DNA에 자신의 생체 정보를 보관한다. 긴 DNA 가닥에는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 4가지 염기가 촘촘히 붙어 있는데 이들의 순서가 바로 생체 정보다. 사람의 세포 하나에 들어있는 염기쌍의 개수는 약 30억개. 염기 순서에 담긴 정보로 단백질이 만들어지고, 모든 생명 현상이 일어난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DNA 염기 순서가 종종 헝클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가끔 있는 일이 아니다. 세포 하나당 하루에 무려 1만 곳의 DNA에 손상이 생긴다. 이런 손상이 누적되면 돌연변이가 일어나 세포의 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고, 심하면 죽거나 암세포로 바뀌게 된다. DNA가 이렇게 많이 손상되는데도 생명체가 멀쩡히 살아있는 건 왜일까? 바로 손상된 DNA를 수리하는 ‘DNA 수리공’이 있기 때문이다.

DNA를 수리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염기 하나를 회복시키는 ‘염기 절단 수리’(Base Excision Repair, BER), DNA가 복제할 때 생기는 오류를 회복시키는 ‘미스매치 수리’(MisMatch Repair, MMR), 감마선 같이 강력한 자극으로 DNA 양쪽 가닥이 파괴됐을 때 쓰는 ‘이중 가닥 파손 수리’(Double Stand Break Repair, DSBR), 그리고 일반적인 손상을 회복시키는 ‘뉴클레오티드 절단 수리’(Nucleotide Excision Repair, NER)가 있다. 이중 외부 자극으로 생기는 오류는 주로 ‘NER 수리팀’이 맡는다. 최병석 KAIST 화학과 교수가 이끄는 ‘손상 DNA 회복시스템 연구단’을 통해 ‘NER 수리팀’의 활약을 살펴보자.

우선 DNA 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DNA는 두 가닥이 지퍼처럼 연결돼 있는 모양이다. 한 가닥의 염기는 다른 가닥의 염기와 상보적으로 결합한다. 아데닌은 티민과, 구아닌은 시토신과 각각 수소결합으로 연결된다. 수소결합은 약한 결합이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서 쉽게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다.

약한 결합 탓에 DNA는 외부 공격에 취약하다. 만약 보관 역할만 필요했다면 DNA 대신 외부 공격에도 끄떡 않는 화합물에 생체 정보를 기록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세포는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 수시로 DNA에서 해당 부분을 꺼내 그 정보를 전령 RNA에 복사하고 도로 집어넣기를 반복한다. 정보를 보존해야 하는 안정성과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편리성을 모두 만족하기 위해 DNA가 생체 정보를 저장하는 화합물로 선택된 것이다.

DNA를 공격하는 대상은 다양하다. 자외선, 화학물질, 활성산소 등은 DNA를 공격해 염기 순서를 뒤바꿀 수 있다. 이들은 DNA 중에서도 특별히 약한 곳을 찾아 공격한다. 공격받은 DNA 부위는 통째로 떨어져 나가거나 염기가 뒤바뀐다.

최 교수팀은 특별히 티민이 연속해서 나오는 부위가 외부 공격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밝혔다. 염기 순서가 ‘티민-티민’이면 같은 가닥의 티민 두 개가 서로 결합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이렇게 되면 DNA 구조는 뒤틀리고 원래 아데닌과 결합하는 티민이 엉뚱하게도 구아닌과 결합하게 된다. 염기쌍 순서가 뒤바뀌는 것이다.

DNA가 공격받으면 세포는 즉각 ‘DNA 수리공’를 동원한다. 이중 ‘NER 수리팀’은 DNA에 문제가 생긴 부위가 있으면 그 주변까지 통째로 잘라낸 다음 복구한다. 마치 살이 곪았을 때 그 부위만 도려내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까지 충분히 도려낸 뒤 싸매는 것과 같다. NER 팀에는 20~30개의 단백질이 속해 있다.

‘NER 수리팀’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DNA에서 손상된 부위를 찾는 것. 최 교수는 이 과정을 “울창한 숲에서 비틀어진 나무 하나를 찾는 것과 같다”라고 설명한다. XPC라는 단백질이 이 과정을 담당한다. XPC는 손상된 부위를 빠르게 찾기 위해 염기 하나하나를 확인하지 않고 DNA 구조를 확인하는 방법을 쓴다. XPC는 DNA를 더듬다가 정상이 아닌 구조를 만나면 달라붙는다. 최 교수팀이 DNA에 일부러 비정상 염기를 집어넣어 구조를 뒤틀리게 만들었더니, 뒤틀리는 정도가 심할수록 XPC가 더 잘 붙었다.

그런데 XPC는 DNA가 정상적으로 잠시 변형을 일으킨 부위에도 달라붙는 문제가 있다. 만약 이런 부위까지 치료한다면 낭비일 뿐 아니라 정상적인 생체 반응을 방해하게 된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RPA와 XPA라는 단백질이 있다. RPA와 XPA는 복합체를 이룬 뒤 XPC가 달라붙은 부위를 살펴 잠시 변형된 것인지, DNA가 손상된 것인지를 파악한다. DNA가 손상된 부위라면 RPA-XPA 복합체가 달라붙으며 복구가 시작된다.

그 뒤 TFⅡH라는 단백질이 복구를 명령하면 XPG와 XPF-ERCC1 단백질복합체는 잘라낼 DNA의 길이를 결정하고, 손상된 부위 주변의 DNA 가닥을 자른다. DNA 중합효소가 잘려나간 부위에 올바른 순서로 염기를 채워 넣는 것으로 복구는 종료된다.

만약 DNA 손상이 너무 커서 도저히 치료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세포는 자기 스스로에게 ‘자살’할 것을 명령한다. 암세포로 바뀌어 주변의 다른 세포까지 악영향을 주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세포자살 기사 바로가기

최 교수팀은 NER에 관여하는 단백질 복합체의 3차원 구조를 알아내고, 이들이 DNA를 수리하는 메커니즘을 밝히고 있다. 큰 그림은 그렸지만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 NER에 관여하는 수십 개에 달하는 단백질 중에 구조와 역할이 밝혀지지 않은 것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암의 직접적인 발병 원인이 DNA 손상인 만큼 이를 해소하는 ‘DNA 수리공’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DNA 수리공의 원리를 응용하면 개인별로 특화된 암 원인을 제거할 수 있어 부작용 없는 항암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글 : 김정훈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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