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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화재, 보고도 못 끈 이유' 글 입니다.

숭례문 화재, 보고도 못 끈 이유

분류 : 공동체 명 부서명 : 부서 명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자 : 2008.02.20

조회수 4778

첨부파일 : No File!

2008년 2월 11일 새벽, 대한민국 국보1호 숭례문이 불로 무너졌다. 전날 오후 9시께 방화가 시작된 지 5시간만의 일이다. 중부소방서는 불이 난지 6분 만에 현장에 도착해 화재 초기에 불길을 잡는 듯 했다. 이때까지 소방당국은 숭례문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마치 비가 오는 것처럼 숭례문 지붕 위로 물을 뿌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붕 위로 피어나던 연기는 그치지 않았다. 급기야 10시 40분 불길이 2층 누각으로 번졌다. 연기는 시간이 갈수록 심해 졌고, 결국 불꽃이 누각 바깥으로 새 나오기 시작했다. 20층 높이까지 오를 수 있는 사다리를 갖춘 소방차를 비롯해 88대가 총출동했지만 숭례문은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뻔히 보고도 끄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불은 가연성 물질이 공기 중에 산소를 만나 열에너지를 만들며 급격히 일어나는 산화반응이다. 불을 끄려면 불타는 물체의 온도를 떨어트려 열을 제거하거나 산소 공급을 차단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소방당국이 뿌린 물줄기는 불에 직접 닿지 않아 열을 식히지 못했다. 소방당국이 숭례문의 건축구조를 사전에 충분히 알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숭례문의 2층 지붕은 전통 목조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다. 지붕 위쪽부터 살펴보면 기와와 보토(진흙)층, 석회층, 적심(지붕에 넣은 원목), 개판(널판지), 서까래(통나무)로 된 6겹 구조다. 문화재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난 1961~1963년 숭례문 보수공사를 할 때, 기와 바로 밑에 있는 보토층에 석회 성분을 많이 넣었다고 한다. 진흙에 석회를 섞은 것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물과 습기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불은 나무를 촘촘히 넣은 적심에 붙었고 내부를 따라 활활 타기 시작했다. 밖에서 볼 때 숭례문의 불길이 잡힌 듯 했지만 자꾸 연기가 나온 이유는 기와와 서까래 사이에 낀 적심에 불이 붙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양의 물을 지붕에 뿌렸지만 석회 성분이 방수 효과를 내는 바람에 불이 붙은 부위까지 물이 스며들지 못했다.

본래 물은 불을 끄는 소화제 가운데 가장 으뜸으로 꼽힌다. 물의 첫번째 역할은 열을 빼앗아 불의 온도를 낮추는 것이다. 물은 비열이 매우 높다. 비열이란 어떤 물질 1g을 1℃ 올리는데 필요한 열량(1cal)을 말한다. 비열이 높기 때문에 다른 물질에 비해 효과적으로 온도를 떨어뜨린다. 게다가 물은 기화열도 높다. 100℃의 물 1g을 수증기로 변화시킬 때 필요한 기화열은 약 539칼로리(cal). 다시 말해 물은 수증기로 변하면서 주변의 열을 많이 빼앗을 수 있다.

수증기로 변한 물은 연소에 필요한 산소 공급을 일시적으로 차단하는 효과도 있다. 물이 수증기로 변하면 부피가 1700배 가까이 커지면서 화재가 난 공간을 뒤덮어 산소와 접촉을 차단시킨다. 때문에 밀폐된 공간에서는 찬 물보다 뜨거운 물이 불을 더 효과적으로 끌 수 있다. 소방차에 뜨거운 물을 싣고 다니지는 않지만 소방서에서는 이 원리를 이용해 안개처럼 물을 흩뿌리는 ‘로이드-레만전법’을 사용한다.

11시 20분께 소방당국이 물 대신 거품식 소화 약제인 ‘산소 질식제’를 투입한 것도 같은 이유다. 비행기나 자동차처럼 폭발위험이 있는 화재가 발생했을 때 물만 뿌려서는 화재를 진화할 수 없다. 물탱크에 ‘포’라는 약제를 뿌리면 소방차에서 분출된 물이 거품으로 변하면서 불이 붙은 물질을 둘러싸서 불을 끄게 된다. 지붕에 물을 뿌려도 불길이 잡히지 않자 산소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하지만 불이 난 부위에 직접 뿌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산소 질식제’도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11시 50분께 소방당국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기와 해체작업에 돌입했다. 3시간 동안 지붕에 쏟아 부은 물은 이미 꽁꽁 얼어 있었다. 기와를 들어냈지만 진흙으로 된 보토층이 얼어 미끄러운 지붕에 서서 진화 작업을 펼치기 힘들었다. 누각의 붕괴 위험까지 있어 내부에 들어간 진화 요원들도 철수했다. 결국 불은 2층 지붕을 모조리 태우고 누각과 함께 쓰러졌다.

숭례문 같은 목조 건물에 불이 나면 신속히 발견해 화재 진압에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이번처럼 적심에 불이 붙게 되면 서둘러 지붕의 기와를 걷어 내거나 서까래 아래에서 구멍을 뚫어 물을 직접 살수하는 것이 좋다. 더 큰 참사를 막기 위해 귀중한 문화재지만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일반 화재와 문화재 화재에 대한 대책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됐지만 이제라도 제2의 숭례문 화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문화재 화재에 대한 진압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글 :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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