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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금고 털이범! 범인은 바로 흰개미' 글 입니다.

희대의 금고 털이범! 범인은 바로 흰개미

분류 : 공동체 명 부서명 : 부서 명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자 : 2008.05.21

조회수 4623

첨부파일 : No File!

TV 프로그램 CSI의 길 그리섬 반장도 놀랄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1월 29일 인도의 한 노인이 자신의 개인 금고가 있는 은행을 방문하였다. 노인은 3년 전에 개인금고에 보석과 현금 그리고 채권을 보관하여 자신의 노후를 대비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보석은 그대로 있는데 현금과 채권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은행에 화재가 난 적도 없고 노인의 개인 금고 자물쇠에 손을 댄 흔적도 없었다. 도대체 누가 훔쳐갔을까?

범인은 흰개미였다. 지폐와 채권 대신 흰개미들이 금고 속에 우글거리는 것을 보고 경찰은 흰개미들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그들이 금고의 작은 틈 사이로 소리 없이 들어와 노인의 노후자금을 강탈해 간 것이다. 그렇다면 흰개미들은 지폐와 채권을 어디로 옮긴 것일까? 바로 자기 뱃속으로 옮겼다. 먹어 치운 것이다.

개미와 달리 흰개미는 지폐를 좋아한다. 지폐는 단순한 종이가 아닌 면섬유로 만든다. 물론 흰개미가 주식으로 삼는 것은 돈이 아니라 오래된 나무 기둥이다. 목조 건축물들은 흰개미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목조문화재는 오랫동안 보존하기가 쉽지 않지만 문화재에 대한 선조들의 애착이 남달랐기 때문에 수백 년 동안 탈 없이 전해 내려올 수 있었다. 건물 내 적당한 환기와 온도 ․ 습도조절 등의 기능을 자연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하여 목조문화재 모습 그대로 보존해온 것이다. 그런데 주변 환경의 개발과 변화, 문화재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흰개미가 서식하기에 알맞은 습도와 먹이를 제공한 셈이 되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전국의 목조 문화재가 크게 훼손되고 있는 상황이다. 경남 양산의 통도사 약사전에 있는 지름 50cm, 높이 3m의 기둥 여덟 개 가운데 다섯 개가 이미 흰개미의 습격을 받았다. 두드려보면 ‘퉁’ 소리가 나고 주먹이 들어갈 정도로 기둥에 구멍이 나 있다. 피해를 입은 곳은 통도사뿐만이 아니다. 전남 무위사, 전북 선운사, 충남 마곡사, 충북 법주사, 경북 은해사, 강원도 오죽헌 등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목조 문화재 69 곳 가운데 33곳이 피해를 입었다. 건축물의 나무기둥뿐만 아니라 고문서와 서적까지도 마구잡이로 먹어치운다.





이름만 개미일 뿐, 흰개미는 개미와 다르게 생겼다. 개미는 허리가 잘록하고 더듬이가 구부러졌지만, 흰개미는 허리가 두루뭉술하고 더듬이가 곧다. 단지 하얗고 조그마한 것이 개미처럼 작고 무리지어서 기어 다니기 때문에 ‘흰개미’라는 이름이 붙었을 뿐이다. 종-속-과-목-강-문-계의 체계로 분류할 때 흰개미는 곤충강 흰개미목에 속하고, 개미는 곤충강 벌목에 속한다.

흰개미가 섬유질을 좋아하는 까닭은 소화기관 속에 살고 있는 미생물 때문이다. 소가 풀을 잘 소화시키는 이유는 위장에 살고 있는 미생물들이 섬유질의 주성분인 셀룰로오스를 분해하는 효소들을 내놓기 때문이듯, 흰개미도 마찬가지다. 최근 과학자들은 흰개미의 소화기관에서 셀룰로오스를 당분으로 분해하는 효소를 배출하는 박테리아를 발견하고 효소의 유전자를 분석하였다.

과학자들은 이 효소의 메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하면 목재를 분해하여 에탄올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바이오 에탄올은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미래 에너지이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세계적인 식량난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주로 곡물에서 생산하기 때문이다. 흰개미 창자 속의 미생물을 우리가 키울 수 있다면 목재에서 많은 양의 바이오 에탄올을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친 환경파괴는 소탐대실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흰개미는 약 2억 년 전 지구에 나타났다. 바퀴벌레같이 흰개미 역시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들은 흰개미를 찾아 죽이면서 이렇게 말한다. “도대체 이놈들은 뭣 하러 인간의 생활터전에까지 내려왔는가?” 하지만 말은 바르게 하자. 흰개미는 원래 죽은 나무를 먹어치우는 생태계의 청소부 역할을 하는 이로운 존재다. 인간이 그들의 영역을 침범한 이상, 흰개미와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글 : 이정모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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