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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모 아빠, 알고보니 트렌스젠더' 글 입니다.

니모 아빠, 알고보니 트렌스젠더

분류 : 공동체 명 부서명 : 부서 명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자 : 2008.05.28

조회수 4692

첨부파일 : No File!
애니메이션 영화 ‘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은 열대바다 속 말미잘과 공생관계로 유명한 크라운피쉬(흰동가리)이다. 아빠인 마린이 잃어버린 아들 니모를 찾아서 도심 속까지 진출해 마침내 니모를 구해오는 생생한 모험여정을 그렸다.

미아가 많은 요즘, 마치 잃어버린 자식 찾기에 나선 눈물겨운 아빠의 사연을 보는 듯 감정이입이 되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그런데 과학의 눈으로 보면 조금 생각해 볼 것이, 과연 이 영화가 생물학적으로 타당한가이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알고 있는 엄마 아빠 자식의 구분은 물고기들에겐 조금 더 복잡하게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는 제대로 엄마 아빠 노릇하는 물고기가 없다고 하는 게 맞겠다.

또한 이 크라운피쉬는 특이하게도 ‘자웅동체’ 물고기이다. 즉 한 개체가 마음먹기(?) 따라 수컷도 될 수 있고 암컷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건 단지 한 방울의 성호르몬뿐이다. 암컷은 수컷보다 2~3배 더 크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에너지가 많이 드는 난자 생산을 위해 암컷이 커지고, 저 에너지의 정자생산을 하는 수컷들은 상대적으로 작아진다고 말한다. 이건 물고기에만 적용되는 원칙이겠지만 크라운피쉬 무리 내에서 생식능력을 가진 수컷은 많이도 필요 없고 단 한 마리면 족하다. 그야말로 ‘아마조네스(신화 속 여인왕국)’가 따로 없는 것이다. 처음에는 모두 수컷이었다가 그중 큰 것이 암컷이 되어 번식을 하는데, 결국 암컷으로 되어야만 비로소 안정된 말미잘 속에서 생활을 하게 된다.

크라운피쉬는 겁이 많고 경계심이 강해서 말미잘 안에 들어가 공생하는 습성이 있다. 말미잘 안에 집을 짓고 살면서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말미잘에게 물고기들을 유인해 준다. 말미잘의 촉수에는 독을 지닌 쐐기세포가 있어 침입자나 먹이감이 접근하면 총을 쏘듯이 쐐기세포를 발사해서 먹이를 마비시킨 후 먹는다. 그러나 크라운피쉬는 특별한 점액으로 온몸을 둘러싸고 있어 말미잘의 독을 맞아도 안전하다. 이렇게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살아가기 때문에 크라운피쉬를 아네모네(말미잘)피쉬라고 부르기도 한다.

말미잘 속 세력을 점하고 있는 1마리 암컷은 심지어 수컷을 괴롭혀 성전환을 방해하기도 한다. 자기들 입장으로서는 경쟁자가 그만큼 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수컷들 중에서 크고 힘이 센 수컷이 암컷이 되는데 암컷은 몸집이 크고 힘이 센 것을 이용해 수컷이 성전환을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위압감을 준다. 크라운피쉬는 텃새가 심한 동물이라서 말미잘의 공간이 충분할 때는 새끼들과 함께 살지만 다 자란 새끼는 다른 말미잘을 찾아가야 한다.

그럼 이렇게 매일 괄시받는 상황에서 과연 아빠 마린이 아들 니모를 찾아 떠날 수 있을까? 사실 그건 굉장히 무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항상 말미잘 속에서 생활을 하는 크라운피쉬로서는 말미잘 주변을 떠난다는 건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말 슬프고 안타깝지만 말미잘 숲에서 밀려난 어린 새끼 니모는 마치 까마득한 절벽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진 아이의 운명에 비유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살아난다면 니모는 혼자서 어떻게든 다시 돌아와야 한다.

이처럼 신기한 ‘자웅동체’ 현상은 하등생물의 경우는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고등생물에서는 어류, 양서류에서 주로 나타난다. 이런 종류의 물고기는 크라운피쉬 외에도 400여 종이 더 넘는다. 우리가 흔히 보는 붕어 역시 자웅동체 물고기인데 암컷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낚시질을 하면 대부분 알을 품은 암컷이 잡힌다. 물고기 세계의 암컷 선호주의는 다시 더 하등의 곤충세계로 넘어가면 극점에 이르게 된다. 사마귀 암컷이 교미중인 수컷을 잡아먹고 암거미 역시 교미 후 수컷을 잡아먹는 현상은 너무도 유명하다.

니모 이야기의 주인공이 크라운피쉬가 아니라 해마나 큰가시고기였다면 아주 그럴 듯 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들 역시도 자기 삶의 터전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계는 여전히 지니고 있다. 이들 두 물고기는 누구나 알다시피 눈물겨운 부성애로 유명하다. 그 두 종의 물고기 아비는 자식이 알에서 부화할 때까지 새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 결국 새끼들이 모두 떠나면 가시고기의 경우는 너무 지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한다.

아마도 니모 이야기에 크라운피쉬를 택한 것은 화려한 외모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물고기마다 습성이 다를 뿐이지 어쩌면 따뜻한 부성애는 어느 물고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허구가 가득한 만화영화지만 궁극적으로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건 부모와 자식 간의 소중한 사랑이다. 거기에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헤엄쳐, 계속 헤엄쳐”라고 연신 흥얼거리는 도리의 콧노래는 영화가 은연중에 우리에게 보내는 교훈이다.

글 : 최종욱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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